본문 바로가기

삶, 사랑, 사람

반전세…깡통 전세…울고싶은 '전세난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전용 59㎡ 아파트 전세에 살고 있는 이성훈(39)씨는 최근 5000만원을 올려달라는 집주인과의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좀 더 나은 조건의 전세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며칠 동안 주변 중개업소를 훑었지만 결국 헛걸음만 했다. 나와 있는 물건의 절반 가량은 매달 70만원 안팎의 월세를 내야 하는 반()전세인데다, 그나마 전세 물건이라곤 집값이 떨어진 탓에 은행 대출이 시세의 60%를 넘는 이른바 '깡통전세'들 뿐이었다. 이씨는 결국 보증금을 올려주는 대신 월세 50만원을 내는 반전세 조건으로 얼마전 살던 집 주인과 2년 재계약을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전세난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세 수요는 급증하는데 비해 전세 물량이 부족한 전형적인 수급불균형의 괴리가 벌어지면서 올 가을 전세시장을 불안케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최근 가을 이사철을 많아 전세물건이 보증부월세로 바뀌거나, 전셋값이 급등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조선일보DB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에서 시작된 전세난. 하지만 그 표면적 원인 뒤에는 ▲월세 비중이 커진 임대차 시장 구조와 ▲집값 하락에 따른 잠재적 '깡통 전세' 우려 ▲비자발적 전세 수요 증가와 같은 가려진 인자가 숨어있다.

   

◆ 월세 비중 높아지는 임대차 시장

   

전셋값이 비싸지면 전셋집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전세가격이 그리 높지 않아도 전세 구하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저금리 기조로 집주인들이 은행 이자보다 높은 월세를 선호하는 탓에, 어지간한 집주인들이 재계약을 놓고 한꺼번에 목돈을 올리는 대신 그만큼을 월세로 받는 반전세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토해양부가 매달 발표하는 전ㆍ월세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7월에 거래된 임대차 주택의 경우 전세가 작년에 비해 8%가량 늘어난 데 비해 월세는 12.9%가량 증가했다.

   

강동구 둔촌동 S공인 관계자는 "전셋값이 뛴 만큼 전세 보증금만 올리기 보다, 인상폭 만큼을 월세로 받으려는 반전세 물건이 급격히 늘었다"며 "금리가 낮고 집값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추세가 지속된다면 전세 매물이 점차 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복병으로 등장한 '깡통 전세'

   

집값은 하락한데 비해 전세 보증금이 오르면서, 주택담보 대출금과 임대보증금의 합이 집값을 육박하거나 심지어 이를 넘어서는 '깡통 전세'가 늘어난 점도 세입자들이 전세 물건을 찾기 어려워진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근저당 순위에서 은행보다 후순위인 전세 세입자가 자칫 이같은 깡통 전세로 들어갈 경우 보증금을 떼일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대출이 없거나 적은 아파트라야 안심하고 전세계약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의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최근 70% 중반까지 하락한 상황. 특히 버블세븐 지역은 70% 초반, 일산은 69.4% 등을 기록하고 있다. 경매로 집을 내놓아도 채무를 다 해결할 수 없는 아파트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전세 계약시 대출금과 전세 보증금 합의 집값의 70%를 넘지 않는 집을 선택하는 게 좋다"며 "집값 하락세로 인해 깡통전세가 늘어날 수록 전세 선택의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년에는 전셋값이 상승하면 매매수요도 늘어났지만, 최근에는 경기침체로 매매수요는 늘어나지 않고 전세수요만 늘어나 전세난이 야기되고 있다./조선일보DB

◆ 전세난 부추기는 자발적 전세 가수요

   

주택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다 보니, 주택 구매 여력이 있어도 당분간 전세 살기를 희망하는 자발적 전세 가수요가 증가한 것도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 상당수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이 급등할 경우 소형주택 구매로 갈아타려는 매매 전환 수요도 나타났지만, 최근에는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란 심리가 팽배해지면서 자발적 전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전세수요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은 "수도권 주택의 경우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60~70% 정도면 임대차 수요가 매매수요로 전환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추가하락에 대한 우려로 한동안 전세를 택하려는 심리가 확연해지면서 무주택자 서민층의 전세난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원본 위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5/20120925016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