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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청년드림]이게 월급? 중소기업 취직하느니 차라리…

꽤 괜찮은 산업경쟁력, 그러나 낮은 고용유연성과 열악한 중소기업, 노조의 잦은 파업, 창업을 기피하는 문화, 부실한 직업교육 인프라….

   

만약 '일자리 창출 올림픽'이 있다면 한국은 '제조업경쟁력'이란 스타플레이어에만 의존한 '원맨팀'에 가깝다. 평소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이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기량이 녹슬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하위권으로 추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1970, 80년대 고도성장기에서는 이런 경제구조로도 일자리 창출에 큰 문제가 없었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이 투자하는 만큼 고용도 자동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혹독한 저성장기에 접어든 지금은 이런 '원맨팀'으로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26일 발간된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모니터그룹의 '청년일자리창출 경쟁력 평가 보고서'는 우리가 일자리를 바라보는 사고의 틀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 고용구조와 사회문화 인프라 최하위

   

일자리경쟁력에 대한 5개 분야 중 한국의 고용구조경쟁력 점수는 1.38점으로 20개국 중 가장 낮다. 근로자의 해고와 재고용이 어렵고 중소기업의 상대적인 경쟁력도 낮아 양질의 일자리가 일부 대기업에만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우선 한국 중소기업의 임금수준이 대기업의 64%로 20개국 가운데 최하위인 점에 주목했다. 질 좋은 일자리가 대·중소기업에 고루 분포돼 있는 '일자리 강국'들과 달리 한국의 중소기업은 경영상태가 열악해 구직자들이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고임금 일자리로 갈 수 있는 경로도 거의 차단돼 있다. 중위소득 50% 미만의 근로자가 향후 저임금 수준을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upward mobility)은 한국이 29%로 20개국 중 19위에 그쳤다. 결국 구직자들은 처음부터 높은 초임(初賃)을 원하게 되고, 기업들은 그 부담에 청년 고용을 더욱 꺼리는 악순환에 빠진다.

   

선진국보다 턱없이 낮은 노동유연성도 고용 창출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한국은 직원 해고 비용이 커서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기피하는 데다 해고된 근로자들을 위한 생계비 지원 등 사회안전망도 바닥권이라 실업자들의 재취업률이 매우 낮다. 이런 열악한 고용구조는 중소기업이나 생산직 일자리에 대한 인식을 낮춰 막대한 대졸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창업에 대한 선호도 역시 하위권이다. 청년 가운데 창업이 두렵다고 응답한 비율은 41%로 20개국 중 다섯 번째로 높았다. 사업에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할 수 없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금융기관이 벤처기업 대출을 해줄 때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한국은 노조의 파업이 잦고 노사 간의 사회적 합의도 지켜지지 않은 사례가 빈번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한국의 사회문화 인프라경쟁력 역시 20개국 중 최하위로 처졌다.

   

○ 인재육성 시스템도 열악

   

한국은 인력육성 및 직업교육 분야에서도 하위권(16위)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졸자의 직업교육이 부족해 이들의 업무역량이 떨어지는 데다 그나마 실업계고교와 전문대도 교육의 질이 높지 않다고 모니터그룹은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직업교육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실업계고교마저 대학 진학 통로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한국 실업계고교 졸업생의 대학진학률은 71%에 이른다. 이들의 무분별한 대학 진학 때문에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셈이다.

   

청년들의 화려한 교육수준도 정작 기업엔 별다른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72.5%로 OECD 최고 수준이지만 기업의 대졸자 직무역량 만족도는 5.4점으로 16위에 그쳤다.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도 떨어져 인구 1000명당 1.5명꼴(약 7만2000명)의 대학생이 해외로 순()유출되고 있다.

   

류재우 국민대 교수(경제학)는 "이 많은 대학생 모두에게 좋은 일자리를 줄 수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고교 직업교육을 전문화하고 고졸 직업인들도 다닐 수 있는 야간대학 같은 과정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고용을 뒷받침할 정부 제도와 규제의 경쟁력(18위)도 최하위권에 그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용예산 비중은 19위, 청년 고용예산도 전체 고용예산의 8.4% 수준에 불과했다. 고용지원센터는 전국 81곳에 마련돼 있지만 상담자 1명당 담당하는 경제활동인구는 무려 6700명으로 일본의 두 배 수준이었다. 스웨덴은 청년취업자의 42%가 공공 고용서비스를 통해 일자리를 얻고 있지만 한국은 2009년 기준 7.7%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의 창업지원도 부족해 사업에 자기자본을 들이는 비중이 18위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 '고용 없는 성장'에 빠져

   

한국의 일자리경쟁력에서 그나마 남은 보루는 제조업경쟁력이다. 한국은 전자제품 및 자동차 제조업 등 기술집약산업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고용을 창출해왔다. 또 최근 5년간 경제성장률도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 수준이다. 문제는 이들 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의 양이 언제까지나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현재 한국에서 20개국 연평균 임금 수준(약 3066만 원) 이상의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업종은 화학과 전자·광학기기, 금속 등 일부 제조업에 국한돼 있다. 교육 관광 의료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다른 선진국과 대조적이다. 경제성장률 대비 일자리 증가폭을 뜻하는 고용탄성치도 20개국 중 18위에 그쳤다. 장기침체에 신음하는 일본(5위)에 한참 떨어지는 성적표다.

   

모니터그룹은 한국이 '고용 없는 성장'에 빠진 주된 원인으로 제조업의 첨단부품 수입 비중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 제조업의 중간재 수입 의존도는 23.3%로 일본(12.5%)의 두 배 수준이다. 핵심부품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독일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고용을 꾸준히 창출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일자리가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점도 문제다. 모니터그룹은 "현 상황에서는 한국 제조기업의 성장은 오히려 다른 나라의 고용 창출을 의미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본 위치 <http://news.donga.com/Economy/3/01/20120927/497086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