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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과 비지니스

"집 살땐 능력자 소리듣던 30대 지금은…"

중견기업 과장인 이정석(가명·34)씨는 5년 전 결혼하면서 서울 사당동에 있는 99㎡형 아파트를 4억8000만원에 샀다. 이씨는 원래 전세를 구할 생각이었지만, 집을 보러 다니다가 욕심이 생겼다. 2억2000만원의 빚을 낸 그는 번듯하게 집수리까지 해서 아내와 새 보금자리를 꾸몄다.

   

요즘 그는 후회막급이다. 그사이 집값이 5000만원 떨어졌고, 사겠다는 사람도 없다. 빚은 1억8000만원이 남아 한 달 이자만 75만원이 나간다. 이씨는 "한 달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이 350만원인데, 이자를 내고 나면 생활비 대기도 벅차다"고 했다. 그는 "집을 살 때 동료들에게 '능력자' 얘기를 들으면서 기분이 좋았지만, 그런 허영심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며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영원히 집에 저당 잡힌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두렵다"고 했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하우스푸어(house poor·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집을 산 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문제는 40~50대 이후의 문제만은 아니다. 23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새누리당 고희선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집을 가진 30대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하우스푸어인 것으로 드러났다.

   

◇30대 하우스푸어가 가장 빨리 증가

   

고희선 의원은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은 사람 가운데 가처분소득 중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쓰는 돈이 10% 이상이고, 통계청이 실시한 가계금융조사에서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에 부담을 느끼고 있고 가계 지출을 축소하고 있다'고 답한 가구를 하우스푸어로 정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집을 가진 1102만7000가구 중 하우스푸어는 138만6000가구(12.6%)로 집계됐다. 2010년에는 집을 가진 1055만7000가구 중 113만8000가구(10.8%)가 하우스푸어였다. 하우스푸어 가구는 1년 새 21.8%가 늘고, 주택 소유 가구 중 비중도 1.8%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특히 집을 보유한 30대 이하 177만2000가구 중 하우스푸어가 44만4000가구에 달해 25.1%를 차지했다. 1년 전에 비해 8만8000가구(24.9%) 늘어나고, 주택 소유 가구 중 비중은 20.2%에서 4.7%포인트 늘어났다. 전체 평균에 비해 30대 이하 하우스푸어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체 하우스푸어 중 30대 이하는 32.0%로 다른 연령층에 비해 가장 비중이 크다. 40대는 31.8%, 50대는 23.0%로 나타났다. 2010년에는 40대가 더 많았었다.

   

◇집값 상투 잡은 30대, 생계형 대출로 힘겨운 버티기

   

30대 이하 중에 집을 가진 가구주의 숫자는 40대나 50대에 비해 각각 100만명 이상 적다. 또 30대 이하 중에 집을 가진 가구주는 1년 새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30대 하우스푸어가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30대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전인 2005~2007년에 집중적으로 집을 샀다. 30대의 소득으로는 과한 경우도 많았지만,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베팅을 한 것이다. 그 뒤 집값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다른 연령층에 비해 소득과 자산이 적은 30대가 상대적으로 버티기 힘들어졌다는 분석이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40대 이상은 저축해 놓은 돈이라도 있어 버틸 여력이 있지만 30대는 고스란히 충격에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집을 가진 30대 이하 가구들이 실직이나 사업 실패로 생업에 문제가 생기자, 유일한 자산인 집을 담보로 생계용 자금까지 대출받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7월 말 현재 국민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6조5719억원인데, 이 중 집을 사는 목적이 아닌 대출이 7월 32조4479억원으로 전체의 40%를 넘겼다. 물론 여기엔 30대도 상당수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A 시중은행 임원은 "창업에 실패했거나, 실직한 30대의 상당수가 우선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원본 위치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3/2012092301435.html?related_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