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출금 절반 날릴 판… 스펙시트(Spexit : 스페인의 유로존 이탈) 우려 확산
유로존 4위의 경제대국 스페인이 흔들리고 있다. 국채 금리가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힘든 '마(魔)의 7%' 선에 근접했다. 자본유출도 본격화해 올 1분기 중 1101억유로가 해외로 순유출됐다. 4~5월 중 은행에서 31억3000만유로의 예금이 빠져나가는 등 예금 이탈 양상도 심각하다. 이제는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보다 스페인발 공황을 의미하는 '스펙시트(Spexit)'가 먼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스페인 위기는 은행 부실 위기
최근 스페인 위기가 불거진 것은 일차적으로 그리스 위기에서 비롯된 전염효과 때문이다. 그동안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누가 먼저 위기에 빠져들지 경쟁해 왔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이탈리아가 10년 국채수익률이 7.2%를 넘으면서 스페인보다 더 위험국가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취임한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의 개혁조치가 외부의 신뢰를 얻고 재정수지도 양호해지는 등 가시화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스페인은 금융권 부실 문제에 발목이 잡혀 그리스 다음의 전염 대상국으로 지목되고 있다. 스페인 은행들은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최근까지 주택가격의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대출이 크게 부실화되고 있다. 전체 부동산 대출 3300억유로의 54%에 해당하는 1800억유로의 대출이 회수 불가능하다는 추정이다.
▲ 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긴축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스페인 부실은행 방키아를 돼지로 비유한 가짜 화폐를 들고 정부의 긴축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유로존 4위 경제국 스페인에서도 최근 은행권 부실 문제가 부각되면서 결국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AP 뉴시스
2년 전 990억유로 규모로 편성된 은행구조조정자금(FROB)은 현재 53억유로밖에 남지 않았다. 스페인 정부의 추가 지원이 불가피하다. 스페인 정부가 은행들의 부채를 떠안게 될 경우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얽히는 복합위기의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불과 4년 만에 정부부채가 2배나 늘어날 정도로 증가속도가 빠른 가운데 금융위기마저 발생하면 스페인 정부가 EU(유럽연합)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의 경우 부채규모가 너무 커 상환능력(solvency)의 문제를 안고 있는 데 비해 현재 스페인은 상환능력을 의심받기보다 유동성(liquidity)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부채 비율은 2011년 말 현재 68.5%로서 유로존 내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은행 부실 처리에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면서 일시적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마이너스 성장세가 장기화된다거나 고금리가 고착화되면 유동성 문제가 머지않아 부채 상환능력이 의심받는 단계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외부지원 필요한데, 방법 두고 논란
문제는 스페인이 구제하기에도 너무 크지만(too big to save), 실패를 방치하기에도 너무 크다는(too big to fail) 것이다. 유로존 당국이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다. 일단 현재 유로존 내에서 기존의 구제금융을 포함하여 스페인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지원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지원대상은 스페인 정부보다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은행권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ECB(유럽중앙은행)의 금리인하와 유럽계 시중은행에 연 1% 금리의 특별자금을 공급하는 장기대출 프로그램의 확대가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지난해 ECB가 장기대출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스페인과 이탈리아 은행들의 대출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나, 어느 정도 효과도 기대해 볼 만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론 스페인 은행의 부실채권 문제를 100% 해결할 수 없다. 이때문에 유로존 정책 당국자들은 유럽 차원의 은행 구조기금을 통해 스페인 은행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오는 7월 출범을 앞두고 있는 유럽 안정화 기구(ESM) 내에 기금을 조성해 스페인 은행권을 직접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스페인 국가 부도 가능성은 10% 내외
스페인은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그리스와 달리, 무질서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10% 정도로 비교적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구제방식에서 벗어나 지원대상을 민간부문(스페인 은행)으로까지 확대하는 의사결정에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을 전망이다.
스페인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디폴트 시 파급효과가 그리스나 포르투갈의 경우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유로존 회원국들로서는 역내 은행위기의 악화와 이탈리아로의 전이를 막아내야 하는 상황이다.
스페인이 디폴트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그 즉시 유럽 차원의 지원과 회생방안이 모색될 가능성이 크다. 스페인의 유로존 탈퇴에 따르는 정치경제적 충격과 비용은 유로존의 어느 나라에게나 감당하기 힘든 수준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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