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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 사람

지독히도 불쌍한 조선 왕조

 

언제부터 인지 TV 미니 시리즈에 조선 왕조의 가상화된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것들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백마 탄 왕자님부터 왕족을 이야기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 한 둘이었냐 마는….

솔직히 요즘 생각에 조선 왕조가 역사 상 가장 불쌍한 왕조가 아니었나 한다. 어떻게 보면 세종을 거치면서 동북아 군사 강국이 위상을 가지기도 했었고, 우리 나라의 한글과 과학, 실학을 꽃 피운 뛰어난 왕들이 있기도 했지만, 역대 왕조들 중에 이렇게 실랄한 비판을 받는 왕조는 없었던 듯 하다.

외세에 국권을 침탈 당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몽고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언제 외세에 국권을 침탈 당하지 않고 지내던 시간이 얼마나 되었었나?

왕들이 학정을 폈기 때문인가? 아니다 왕들의 수준은 천차 만별이었고, 나름 선정을 펼친 왕들이 적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아니다 조선의 이전에 고려와 통일 신라에 대하여 이렇게 신랄한 비판을 하였었나?

 

아마도 이는 민의 위상이 나라의 주인으로 변하는 경계에 있는 왕조이므로 받아야 하는 수모일 것이다.

이전에 민이란 왕의 소유이거나 아니면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부 귀족의 소유였다. 조선 역시 마찬가지, 일반 평민은 천민이 아니면 자유로왔지만, 소작농, 보릿고개의 식량의 채무 관계로 인하여 거주 이전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권리에 제한을 받았다. 투표권이나 기타 아무런 권리도 없을 뿐더러 왕까지 가기 전에 지방 유력자의 눈 밖에 나면 매질로 죽어도 하소연 할 구석이 별로 없는 불쌍한 시세였던 것이 바로 그 시대의 민이다.

왕이고 누구고 간에 입에 발린 민심이 천심이라고 떠들었지만, 그들에게 민은 장기판 위의 장기알보다도 못한 것이오, 소유물의 일부일 뿐이다.

임진왜란에 왕이 건넌 후, 추격을 차단하기 위하여 배를 태워 버리고 백성을 건너지 못하게 한 왕…. 그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청의 사신에게 고개 하나 넘을 때 마다 양민의 처녀를 밤 시중의 제물로 바친 그들… 그 시대, 아니 그 다음 세대에도 아무도 그들을 비판하지 않았다.

하지만, 6.25 한강 다리 폭파, 한미 굴욕 협정에 대하여 우리는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그 정권이 권좌에 있을 때도 비판하고 잘못을 이야기 한다.

조선은 이래서 불쌍한 것이다. 이전의 백성은 여전이 노예와 비슷한 살이에서 왕이 바뀌는 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일 뿐… 생각이나 스스로의 권리가 바뀐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조선 이후의 사람들은 주인이 바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조선의 실수를 이야기하고, 그들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